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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포털 실시간 검색어에 '하영'과 '증조부'라는 단어가 나란히 오르내리고 있습니다. 예능 프로그램에서 무심코 꺼낸 집안 이야기 하나가 이렇게 큰 논란으로 번질 줄은 아무도 몰랐을 텐데요.
특히 이 사안을 두고 역사학계에서도 시각이 완전히 갈리고, 뜻밖에 소설가 겸 대학교수까지 목소리를 보태면서 논쟁은 점점 더 복잡해지는 모양새입니다. 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건지 차근차근 정리해봤습니다.

1. 예능에서 꺼낸 '4대째 의사 집안', 왜 논란이 됐나

지난 8월 7일 방송된 KBS 2TV의 한 예능 프로그램에서 배우 하영이 자신의 집안 내력을 소개하는 장면이 전파를 탔습니다.
하영은 "증조할아버지가 양의학을 일본에서 배워 와 한양에 개원한 첫 의사였고, 고종의 진료도 봤다"는 취지로 4대째 이어진 의료인 집안임을 자랑스럽게 소개했습니다.
방송 직후 시청자들 사이에서 "그 증조부가 정확히 누구냐"는 추적이 이어졌고, 얼마 지나지 않아 특정 인물의 이름이 거론되면서 상황이 급변하기 시작했습니다.
예능에서 자랑스럽게 소개된 '4대째 의사 집안' 이야기가, 증조부의 신원이 특정되면서 논란의 시작점이 됐습니다.
2. 증조부 안상호, 실제로는 어떤 인물이었나

하영의 증조부로 지목된 인물은 안상호(1872~1927)입니다. 대한제국 최초의 국비 유학생 중 한 명으로, 1902년 일본 도쿄지케이의학전문학교를 졸업해 한국인 최초로 일본 의사 자격증을 취득한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이 때문에 '조선의 양의 1호'로 불리며 근대 의료사에서 상징적인 인물로 꼽혀 왔습니다.
그런데 안상호가 1916년 결성된 대정친목회(대정실업친목회)의 평의원 명단에 이름을 올린 기록이 실제로 확인됐습니다. 이 단체는 이완용, 송병준 등이 주도해 조선인 유력자들을 포섭하고 '내선융화'를 선전할 목적으로 조직된 단체로,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에도 친일 단체로 규정돼 있습니다. 1920년 조선일보 창간을 주도한 것도 이 단체였습니다.
이준식 전 독립기념관장(역사정의실천연대 정책위원장)은 안상호가 대정친목회 평의원으로 참여한 것이 사실이라면 "친일행위를 한 것이 맞다"고 밝히며, 친일인명사전에 이름이 없다는 이유만으로 친일 행적이 아니라고 판단할 수는 없다고 지적했습니다.
안상호는 근대 의료사에 이름을 남긴 '조선 양의 1호'이자, 동시에 1916년 친일 단체 대정친목회 평의원으로 활동한 기록이 확인된 인물입니다.
3. '사실무근'이라던 소속사, 하루 만에 사과로 돌아선 이유

논란이 커지자 하영의 소속사는 8월 10일 "친일 행적을 했다는 의혹은 사실무근"이라는 공식 입장을 냈습니다.
그런데 불과 하루 만인 8월 11일, 소속사는 "충분한 검증 없이 성급히 답변해 혼란을 드린 점 진심으로 사과드린다"며 입장을 완전히 뒤집었습니다. 대정친목회 평의원 명단에 실제로 안상호의 이름이 올라 있었다는 사실이 재차 확인됐기 때문입니다.
이 과정에서 소속사가 입장문에 증조부를 '안상호 선생'이라고 표기한 점도 도마에 올랐습니다. '선생'은 예가 뛰어난 사람을 높여 부르는 존칭인데, 친일 행적에 대한 진정성 있는 사과라면 이런 존칭을 쓸 수 없다는 지적이 나옵니다.
여파는 광고 시장으로도 번졌습니다. 하영이 출연했던 의류 브랜드 광고 영상이 비공개로 전환됐고, 삼성전자 공식 채널에 있던 출연 영상도 모두 비공개 처리된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특히 광복절을 코앞에 두고 불거진 논란이라는 점에서 여론은 한층 더 예민하게 반응하는 분위기입니다. 네티즌들 사이에서는 "본인 입으로 집안 자랑을 하다가 자멸한 것"이라는 비판이 특히 많이 나오고 있습니다.
소속사는 '사실무근'에서 하루 만에 사과로 입장을 바꿨고, 광고 영상 비공개 조치 등 후폭풍이 이어지고 있습니다.
4. 역사학계도 엇갈리는 시선, 어떻게 다를까

흥미로운 건 이 사안을 바라보는 역사학계의 시선도 하나로 모이지 않는다는 점입니다.
앞서 언급한 이준식 전 독립기념관장은 특정 단체 가입 자체가 친일 행위로 인정될 수 있다는 비교적 명확한 입장을 밝혔습니다.
반면 역사학자 심용환은 조금 다른 톤을 냈습니다. 그는 "'친일 부역 행위'가 명확히 밝혀지지 않은 상태에서, 단지 특정 단체에 이름이 올라 있었다는 사실만으로 그를 '친일파'라고 규정하는 건 위험한 발상"이라고 주장했습니다.
다만 심용환도 "그가 당시 엘리트였고, 대정친목회처럼 친일파가 많이 참여했던 단체에 소속돼 있었으며, 일본이 시정 홍보에 그의 집안을 활용했다는 점에서 만년의 그가 존경받을 인물은 아니라는 것은 맞다"고 덧붙였습니다. '친일파'라는 단정적 규정에는 신중하되, 완전히 무관한 인물은 아니라는 절충적 시각인 셈입니다.
단체 가입 자체를 친일 행위로 보는 시각과, 단정적 규정에는 신중해야 한다는 시각이 역사학계 안에서도 공존하고 있습니다.
5. '제국의 위안부' 저자 박유하는 왜 다른 목소리를 냈나

이 논란에 예상 밖의 인물이 가세하면서 화제는 한 번 더 커졌습니다. 세종대 명예교수이자 '제국의 위안부'의 저자인 박유하입니다.
박유하는 하영을 향한 비난을 두고 "순결강박"이라는 표현을 썼습니다. 일제 치하에서 정치·경제·문화·교육 등 모든 분야의 리더 위치에 있었던 사람이라면 교육 과정부터 사회 활동까지 태생적으로 '구조적 친일'일 수밖에 없었다는 취지의 주장입니다.
박유하는 안상호에 대해서도 "파이어니어"라는 표현을 썼습니다. 1909년 이완용을 습격해 중상을 입힌 독립운동가 이재명 의사(1887~1910, 현직 정치인과는 동명이인)가 남긴 자상을 안상호가 직접 치료해 목숨을 살렸다는 점을 근거로 들었습니다.
다만 박유하의 이런 시각 자체가 그대로 받아들여지는 분위기는 아닙니다. 친일 행적을 시대적 구조의 문제로 돌리는 논리에 대해서는 반박하는 목소리도 만만치 않게 나오고 있어, 논쟁은 하영 개인을 넘어 역사 해석 방식을 둘러싼 논쟁으로까지 번지는 모양새입니다.
박유하 교수는 안상호의 친일 행적을 '구조적 친일'로 해석하며 옹호에 가까운 입장을 냈고, 이는 또 다른 논쟁을 낳고 있습니다.
6. 하영만의 일이 아니다, 연예계 '조상 리스크' 대응은 제각각

이번 논란을 계기로, 비슷한 상황을 겪었던 다른 연예인들의 과거 대응 방식도 함께 재조명되고 있습니다.
밴드 양반들의 보컬 전범선은 외가 5대조가 친일반민족행위자 명단에 오른 소설가 이인직이라는 사실을 스스로 공개한 바 있습니다. 그는 "이완용이 나라를 팔아먹을 때 옆에서 일본어 통역을 했던 사람이 우리 할아버지"라며 신랄하게 자기비판했고, 이인직의 소설을 직접 찾아 읽으며 집안 역사를 성찰의 소재로 삼았습니다.
배우 이지아는 조부가 일제강점기 국방 관련 단체에 거액을 헌납한 기록이 확인되자, 민족문제연구소를 직접 찾아가 관련 자료를 확인했습니다. 이후 "조부의 역사적 과오를 깊이 인식하며 후손으로서 진심으로 사죄한다"는 입장을 명확히 밝혔습니다.
배우 강동원은 외증조부 이종만이 친일인명사전에 등재된 인물이라는 사실이 알려졌을 당시, 초기에는 소속사가 관련 게시물 삭제를 요청해 오히려 비판을 샀습니다. 하지만 이후 영화 '1987'에서 이한열 열사 역을 맡고, 이한열기념사업회에 2억 원을 익명으로 후원하는 등 책임 있는 행보를 이어가며 여론을 돌려세운 사례로 꼽힙니다.
세 사람의 공통점은 사실관계 자체를 부인하지 않고, 각자의 방식으로 인정하거나 성찰하는 모습을 보였다는 점입니다. 하영이 앞으로 어떤 태도를 보일지, 이번 논란이 어떻게 정리될지는 조금 더 지켜봐야 할 듯합니다.
전범선·이지아·강동원 등 앞선 사례들은 사실을 인정하고 성찰하는 태도가 여론 회복의 핵심이었음을 보여줍니다.